[야설 게시판] 아내의 소개팅 - 2부 - 딸타임

아내의 소개팅 - 2부

#2





답답했다. 묵직한 무언가가 자신을 누르고 있는 불쾌한 느낌. 하지만 아랫도리에서 번져오는 황홀감. 배반적인 두 감정이 교차하면서 문득, 윤정은 눈을 떴다.



“헉헉 빨리 깼네요, 헉헉 미연씨.”



“앗, 이게 무슨 짓이예요!”



현우였다. 답답하고 불쾌한 느낌도, 온몸으로 스물스물 번지는 쾌감도 모두 이 남자 김현우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침대 위에 누운 그녀의 몸 위에 한 마리 수컷이 올라타 있었다. 남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원초의 모습 그대로 윤정의 몸을 탐하고 있었다. 윤정의 원피스의 윗부분은 허리춤까지 내려온 채 브래지어가 벗겨져 있었고, 아랫부분 역시 팬티마저 벗겨진 채 짧은 치마가 밀려올라가 있었다. 무엇보다, 큼직한 남자의 물건이 윤정의 아랫도리를 꽉 채운 채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연씨, 헉헉, 기억, 헉헉, 안 나요?”



“현우씨, 이러지 말아요. 아악, 이,이건...나쁜 짓이예요.”



“미연씨가, 헉헉, 이리로 오자고, 헉헉, 그랬잖아요, 헉헉”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해도 엄연히 남편이 있는 내가 다른 남자에게 모텔로 가자고 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윤정은 음식점에서 나온 다음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미연씨가, 헉헉, 너무 예뻐서, 헉헉, 거부할 수가 없었어요.”



말도 안돼. 이 남자가 지금 나에게 뒤집어씌우고 있는 거다. 이게 데이트 강간이란 건가? 온몸을 휘감는 쾌감에도 불구하고 윤정은 한사코 남자의 몸을 밀어내려 했다.



“그만 둬요, 제발. 현우씨.”



현우는 멈추지 않았다. 남자의 움직임이 더욱 빠르고 강해졌다. 현우의 가슴팍을 밀어내던 윤정은 어느 새 남자의 등을 껴안았다.



‘나, 난 어떡하지?’



남편의 얼굴, 아이의 얼굴이 잠시 그녀의 눈앞에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결국 여자는 쾌락에 몸을 맡겼다. 여자의 몸에서 힘이 풀리는 걸 느낀 남자는 속도를 늦추고 그녀의 가슴을 베어물었다.



“미연씨, 가슴이 향긋해요.”



윤정은 남자의 얼굴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지긋이 눈을 감았다.



“미연씨 보지는 따뜻하고 부드러워. 영원히 내 껄로 만들고 싶어.”



남자의 고백 아닌 고백에 윤정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여자의 아랫도리에서 물이 흘러넘쳤다. 남자의 손이 부드럽게 여자의 둥근 엉덩이를 감싸듯 어루만졌다. 여자의 엉덩이가 남자의 손 안에서 춤을 추었다. 조금 전까지 완강하던 몸이 어느 덧 남자의 펌프질에 장단을 맞춰주고 있었다. 여자의 반응이 변하자 남자는 자신감이 생겼다. 남자는 여유롭게 천천히 하체를 움직이며 쾌감을 만끽했다.



“처음 본 순간, 내 여자라고 생각했어. 당신을 놓치기 싫어요, 미연씨.”



윤정은 말이 없었다. 비록 강간으로 시작되긴 했지만 흐드러진 정사를 펼치는 상황에서 남자의 고백이 그녀를 더더욱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꿈결 같은 섹스 속에서도 윤정은 깨달았다.



‘지금 이 남자는 내가 아닌 미연이에게 고백하는 거야. 나 이윤정이 아닌 내 친구 송미연에게.’



하지만 윤정은 남자에게 사랑받는 느낌이 싫지 않았다.



‘난 내가 아냐. 송미연이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윤정은 홀가분해졌다. 지금 이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건 송미연이다. 따라서 나 이윤정은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니다. 누가 들어도 해괴한 논리였지만 남자의 품에 안겨 절정에 이르고 있는 여자에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윤정은 송미연이란 이름 속에 숨어 죄책감을 버린 채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난생 처음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 몸을 섞는데 그 정도 핑계도 없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 여자가 돼줘요, 미연씨.”



남자가 여자의 입술을 탐했다. 윤정은 스스럼없이 입술을 열어 남자의 혀를 맞이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이 남자 김현우의 여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송미연이란 이름 뒤에 숨은 이윤정이 이 남자의 여자가 될 수 있을까.



“현우씨, 당신은 나를 몰라요.”



“그럼, 이제부터 알아 가면 되겠네요.”



남자는 엉덩이가 위로 향하도록 여자의 몸을 돌려세우며 말했다. 남자의 우람한 자지가 윤정의 엉덩이에 닿았다. 여자는 눈을 감았다. 천천히 남자의 물건이 여자의 보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아흑, 너무 커요. 아흑.”



“미연씨에 대해 벌써 하나 알았어요. 뒤로 넣어주면 좋아한다는 거.”



“아흑, 아흑, 당신, 아흑, 바람둥이같아. 아학”



여자는 엉덩이를 흔들었다. 여자의 요분질에 남자는 절정으로 향했다.



“헉헉, 바람둥이 맞아요. 헉헉. 하지만, 헉헉, 지금까지, 헉헉, 미연씨같은 여자를 못 만났을 뿐이죠, 헉헉, 이런 보지를 두고, 헉헉, 어디 가서 바람을 피우겠어요. 헉헉.”



윤정은 이 플레이보이같은 남자의 칭찬이 듣기 싫지 않았다. 아, 저 말이 정말 나를 향해 해주는 말이라면. 송미연이 아닌 나 이윤정에게 해주는 말이라면. 내가 마음껏 저 남자의 달콤한 밀어를 즐길 수 있다면.



남자의 펌프질이 빨라졌다. 호흡도 가빠졌다.



“아, 아, 윽.”



현우는 서둘러 자지를 뺐다. 남자의 정액이 윤정의 희고 아름다운 엉덩이에 뿌려졌다. 사정을 마친 남자는 윤정의 등 위에 축 늘어졌다.



“하아, 안에, 하아, 싸지 않아줘서, 하아, 고마워요.”



윤정은 한 동안 폭풍처럼 지나가버린 남자와의 향연을 음미했다. 그녀는 현우의 매너가 마음에 들었다. 멋있고, 키고 크고, 섹스도 잘 하고, 돈도 많은 이 남자. 윤정은 친구 미연을 떠올렸다.



‘바보 같은 기지배. 이런 킹카를 제 발로 차 버려?’



윤정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이 남자를 두고 홀어머니를 모시는 가난한 남자에게 가버린 미연이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뭐 그것도 고맙지. 그 덕분에 자신이 이런 황홀한 경험을 하게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이처럼 너무 괜찮은 남자가 이혼을 한 걸까? 이 남자와 헤어진 여자는 이 남자의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아니면 그 여자에게 문제가 있었던 걸까? 혹시 이 남자 정말 바람둥이인 걸까? 윤정의 머릿속에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무슨 생각해요, 미연씨.”



남자의 낮고 달콤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여자의 귓등을 간질였다.



“무례했어요.”



윤정의 새치름한 대꾸에 남자는 부드럽게 여자의 가슴을 애무했다.



“그래서.. 미연씨는 싫었어요?”



그녀는 할 말이 없었다. 남자의 품에 안겨 한껏 교성을 지르지 않았던가.



“대답 듣고 싶어요. 미연씨, 싫었나요?”



너무 좋아서 죽을 뻔 했어요,라고 윤정은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남자의 손등을 꼬집기만 했다. 그 행동이 현우에게는 자극적이었다. 분명 긍정의 신호다. 나에게 넘어왔다. 남자의 심벌이 다시 힘을 되찾기 시작했다. 현우는 윤정의 젖가슴을 덥석 물었다.



“아이, 현우씨, 하지 마요. 저 너무 늦었어요.”



사실 윤정은 걱정이 밀려왔다. 대학동창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거짓말을 하고 나왔으나, 그래도 집에서 기다릴 것이다. 윤정은 급히 손을 더듬어 핸드백을 찾았다. 진동으로 돼있어서 몰랐지만 남편으로부터 벌써 전화가 다섯 통이나 와 있었다. 시간은 자정을 향하고 있었다. 이제 신데렐라가 마법에서 풀려 미연에서 윤정으로 되돌아갈 시간이 된 것이다.



“미안해요, 현우씨.”



윤정은 서둘러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대충 몸을 씻고는 옷을 챙겨 입었다.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현우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자신도 따라서 옷을 입었다.



“미연씨, 바래다줄게요. 제 차를 타고 가요.”



그럴 수 없었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눈에 띌 위험이 컸다.



“아녜요. 그냥 혼자 갈게요.”



“사양하실 필요 없어요. 제 기사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현우의 말을 듣는 순간 윤정은 아찔했다. 기사라니... 누군가 윤정과 현우가 이 모텔에 들어온 사실에 대해 또 알고 있는 것이다. 학원과 골프장을 경영하는 사람이니 개인 운전기사를 둘 수도 있을 것이다. 아, 나는 왜 이리 부주의했을까.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난 왜 그렇게 취했던 걸까. 윤정은 후회가 밀려왔다. 후회는 여자를 이성적으로 만들었다.



“아뇨, 혼자 갈게요. 현우씨.”



정색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에 대해 현우는 움찔 놀랐다. 말투가 단호했다. 현우도 더 이상 권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럼 내일 또 연락드릴게요. 대신 택시 타실 때까지는 제가 모시죠.”



현우는 윤정의 손을 잡고 뚜벅뚜벅 앞서 걸었다, 윤정의 힘으로 뿌리치기 힘들 만큼 굳센 손이었다. 윤정은 당황하면서 끌려갔다.







“미연씨, 놔주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택시에 탄 윤정의 귓가에 현우가 남긴 굿바이 멘트가 계속 맴돌았다. 윤정은 드디어 송미연이 아닌 이윤정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김현우에게 사랑고백을 받은 송미연이 아니다. 그저 남편을 두고 외간남자와 부도덕한 정사를 벌인 나쁜 여자 이윤정일 뿐이었다.



집에 돌아온 윤정은 남편의 걱정 섞인 잔소리를 뒤로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의 출근조차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잠이 들었던 윤정은 휴대전화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8시 20분, 아들 녀석 유치원 보내라고 설정해놓은 알람이었다. 개구쟁이 아들녀석은 뭐가 그리 피곤했는지 여전히 자기 침대에서 잠들어 있었다. 윤정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놓은 후 텅 빈 집안에서 연신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초조하게 앉아있었다.



‘내가 지금 뭘 기다리고 있는 거지?’



오전 내내 그녀는 미몽에 사로잡혀 있었다. 누군가 전화를 걸어주기를 바라듯이.



띠리리리~

휴대폰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윤정에게는 구원의 팡파르처럼 들렸다. 그녀는 서둘러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너 어제 어땠어?”



미연이었다. 장난기 섞인, 천진한 친구의 목소리. 미연의 목소리에 윤정은 가슴이 탁 막혔다. 뭐라 말해야 하나. 그 남자는 자신이 송미연과 몸을 섞었다고 여기고 있을 텐데, 내 친구 미연이에게 뭐라 말해야 하나. 커피 한 잔 마시고 헤어진다던 소개팅이 자신을 이처럼 불륜의 어두운 그늘로 밀어 넣고 있는데. 뭐라 말해야 하나.



“그 남자, 어땠어? 잘 생겼지?”



“응. 그래.”



“저녁만 먹고 헤어졌어?”



“....응.”



“그랬구나. 내내 미안해서 일이 손에 안 잡혔는데. 고마워. 내가 조만간 크게 한 턱 쏠게.”



“... 그래.”



“너 왜 그렇게 힘이 없니? 괜찮니?”



“...응... 아니... 조금 아파. 감긴가봐.”



“어제 괜히 긴장해서 그랬나보다, 얘. 어쩜 좋니. 미안해.”



“아냐.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그래, 고마웠고, 다시 연락할게.”



“응.”



미연과 전화를 끊고 나서 윤정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괜스레 눈물이 찔끔 흘렀다. 미연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 새삼 후회스러웠다. 이에 뭐하는 짓인가. 그냥 꿈을 꿨다고 생각하면 돼. 시간 지나면 금세 잊혀지는 꿈. 윤정은 몸을 일으켰다. 기지개를 켜고,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 힘을 내자. 떨쳐버리자.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리자.



띠리링.

침대 위에 놓아두었던 휴대전화에서 문자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윤정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이켜 휴대전화를 집어들었다. 그였다. 김현우.



<미연씨, 어제 잘 들어갔어요?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까봐 오전에는 연락 못했어요.

시간이 되시면 오늘 저녁에 만나요.

답장 기다릴게요. 김현우.>



다시 윤정의 몸에서 기운이 쭉 빠져나갔다, 오늘 저녁에 만나요. 오늘 저녁에 만나요. 오늘 저녁에 만나요. 윤정은 문자메시지를 계속 되뇌었다.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증세에 대해 깨달았다. 오전 내내 윤정은 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냐, 이윤정. 더 이상은 아냐. 넌 이제 이윤정이고, 송미연으로서의 역할은 끝났어. 어제는 실수한 거야. 더 이상은 그 남자를 만날 수 없어.’



윤정은 TV를 크게 틀었다. 지나간 드라마가 재방송되고 있었지만 윤정은 드라마 제목도 내용도 배우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안간힘을 쓰고 화면을 쳐다보고 있을 뿐.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휴대전화가 울렸다. 윤정은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몇 번 끊겼다가 다시 걸리기를 반복하던 전화기에 띠리링~ 문자메시지가 왔다. 한동안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전화기를 바라만 보던 윤정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전화기를 집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만나자는 요청을 거절해도 좋으니,

제발 전화는 받아줘요.

미연씨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요. 김현우>



미연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부엌으로 총총 발걸음을 옮겼다. 씽크대에 설거지할 그릇이 쌓여있었다. 그녀는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설거지만한 것이 있던가. 한동안 접시며 그릇을 닦다보면 모두 지나가버리리라.



띠리링~

쨍그랑~

다시 울린 메시지 알림음에 윤정은 깜짝 들고 있던 접시를 놓쳤다. 바닥에 떨어진 접시는 와작 깨졌지만 윤정은 깨진 접시를 제쳐두고 소파로 달려갔다.



<오늘 저녁 7시에 어제 만난 곳에서 기다릴게요.

미연씨가 나오든 아니든 전 거기 있을 거예요.

김현우>



양손으로 휴대전화기를 꼭 부여잡은 채 한동안 바들바들 떨던 윤정은 문득 휴대전화기의 1번 다이얼을 길게 눌렀다. 남편이었다.



“여보, 어제 갔던 대학동창 수진이, 응, 장례식 치르다가 걔가 결국 쓰러졌대. 몰라. 정신적으로 힘들었나봐. 자기 힘들겠지만 나 오늘 하루만 더 걔한테 다녀와야 할까봐. 미안. 그 집 애가 둘인데 돌봐줄 사람이 없대. 응. 그래. 고마워요. 될 수 있으면 일찍 들어올게. 응. 동훈이는 옆집 서은이네 맡겨놓을 테니까, 당신이 일찍 와서 저녁만 좀 챙겨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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