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게시판] 귀농일기 - 프롤로그 - 딸타임

귀농일기 - 프롤로그

귀농 일기 - 도입부.



글로벌 기업은 아니지만 제법 규모가 큰 인터넷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상한 놈들이 만든 조그마한 기업이 생전 듯도 보지도 못한 서비스를 무기로 우리 회사의 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해오기 시작했다. 명색이 팀장이니, 상대 회사의 서비스와 경쟁력을 분석해서 상부에 보고했다. 상부에서는 우리 팀에게 상대 회사의 서비스를 상대할만한 상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상대회사와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고, 어느 순간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버렸다. 서울이 싫어졌다. 물고 물리는 경쟁에도 신물이 났다. 아내에게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귀농을 하자고 했다. 아내의 반응은 써늘했다.



“잘 다니고 있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귀농을 하자고, 당신 미쳤어?”

“도시생활 지겹지도 않아. 난 이제 싫다.”

“우리 영이는........이제 겨우 7살이야. 영이 교육은 생각하지도 않아?”

“꼭 서울에서 학교 다녀야 한다는 법 있어. 공부는 자기가 노력하기 나름이야.”

“당신!..........정말 무책임하다. 됐어. 가려면 혼자가. 난 못가?”



그날 이야기는 이렇게 종결되고, 아내를 설득하는 일은 일단 보류했다. 그날 이후, 귀농해서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했다. 인터넷을 통해 먼저 귀농하여 살고 있는 분들의 정보도 수집하고, 특용작물 정보 등도 수집했다. 몇 달에 걸친 노력으로 2가지 아이템을 얻었다. 하나는 특용작물인 상황버섯 재배와 농촌 체험형 펜션이었다. 상황버섯 제배는 기술과 경험이 필요한 아이템이다. 야간제 농업관련학교에 진학하여 때아니 공부를 시작했고, 펜션을 하기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그리고 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아내와 상의도 없이 일부터 저질렀다.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지리산 아래 조용한 동네의 땅을 매입하여 펜션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펜션이 반쯤 지어지자 봄에는 산나물체험, 여름에는 민물고기 체험, 가을에는 수확체험, 겨울에는 눈사람 만들기 체험 등 특화된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홍보를 시작했다. 펜션이 완공될 쯤에 아내가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속이고 일부터 벌었다고 노발대발했지만 그동안 준비한 것을 보여주며 하나, 하나 설명하자 아내도 점차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기 일이 있으니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내는 시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라 자신의 개발 및 성공을 더 원했는지 모르겠다.



일단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퇴직금으로 아내와 아이가 살 수 있는 작은 집을 마련한 다음 대출받은 아파트를 처분했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를 서울에 남겨두고 홀로 지리산 아랫마을에 있는 펜션으로 향했다.



펜션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몇 명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마을청년회라고 하는데, 어이없게도 가장 젊은 분이 30대 중반이었다.



“아저씨가 주인이요?”

“예! 제가 주인입니다.”

“뭐하라고, 요기에 요런 이상한 집을 지었소. 별장으로라도 쓰려고 지었소?”

“아닙니다. 여기에 살려고 합니다.”

“어따? 이 사람이 우리가 촌사람이라고 무시하나? 어디 젊디젊은 사람이 요런 촌구석에 와서 산다요.”

“아닙니다. 정말 이곳에 정착하라고 지은 겁니다.”

“참내~ 자꾸 거짓말을 하네. 하여튼 두고 뵙시다.”



마을 청소년회란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며 돌아갔다. 이거 큰일이다.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업을 하려면 마을 사람들의 협조가 절대적인데, 사람들이 믿질 않는 것이다. 진실성을 보여주어야 할 것 같다. 짐정리를 끝나고 인터넷 예약사항을 확인했다. 다행이 휴가철이라 몇 건의 예약이 있었다. 전화로 날짜를 확인하고 선금을 받았다. 그리고 펜션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민물고기 체험을 하려면 마을 끝자락에 있는 계곡을 이용해야 한다.



시장에 가서 막걸리와 안주를 구입하여 마을 회관으로 향했다. 마침 마을회관에 어르신들이 계셨다. 막걸리와 안주를 대접하며, 자기소개와 펜션을 운영할 계획을 일일이 설명했다. 역시나 어르신들도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한 번의 노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날부터 마을 청년회와 부녀회 등을 찾아 대접하고, 시간이 허락하는 하는 대로 일일이 이웃집을 찾아다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나의 진실성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어르신들도 협조적인 분위기로 돌아섰다.



드디어 첫 번째, 손님이 펜션에 도착했다.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10명이 왔다. 짐을 정리하고 식사가 끝나자 손님들을 모시고, 계곡으로 향했다. 먼저 어항과 통발을 지급하여 설치하게하고 반두족대를 주었다. 사실 손님들이 오시기 전에 시장에서 활어를 사다 미리 계곡에 풀어 놓았다. 아이들은 신나게 물고기를 잡았고, 잡은 물고기는 바로 손질하여 야채와 함께 주니 손님들이 너무나 좋아했다. 그리고 밤에는 녹두를 갈아 전을 붙어먹는 체험을 시켜주었다. 손님들은 대단히 만족하고 돌아갔다. 성공이었다.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제값을 한 것이다.



두 번째, 손님이 다녀가고, 다음 손님이 다녀가며 점점 마을 분들의 협조가 필요해졌다. 혼자서 많은 손님들께 서비스하긴 무리가 있지 않겠는가? 먼저 마을 부녀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사는 주인집까지 포함하여 6개 동을 혼자서 청소하고 관리하기 버겁기 때문이다. 부녀회장은 다른 사람들은 농사일에 바쁘니 아직 아이가 없고 비교적 한가한 태국댁과 우나댁을 추천해 주었다.



한명은 태국에서 시집온 여인으로 20대 후반이다. 결혼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 아이가 없다고 한다. 그녀는 우리나라 말도 잘하고, 제법 인터넷이나 회계도 할 줄 알았다. 우나댁은 우크라이나에서 시집 온지 3년 정도 된 20대의 중반의 여인으로 역시나 아직까지 아이가 없다고 한다. 그녀는 우리나라 말이 서툴러 손님을 직접 상대하긴 무리가 있었다. 우나댁에게 청소를 맡기고, 태국댁에게 총무를 맡겼다.



두 사람에게는 일한 시간만큼 돈을 지급하기로 했다. 또한 부녀회에도 수익에 비례하여 후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마을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청소년회분들에게도 협조를 부탁했다. 처음에는 냉담하던 그들도 시간이 흐르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펜션청소와 손님접대 태국댁과 우나댁에게 맡기고, 체험교실은 마을청년회가 조를 나누어 도와주기로 했다. 물론 일에 대한 보답은 각자에게 지급하고, 부녀회와 청년회에 별도의 지원금을 지원했다. 6개월이 흐르자 펜션사업이 안정괘도에 들어왔다. 자신감을 얻는 나는 마을 분들과 상의하여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혼자만의 사업이 아니라 마을의 공동사업으로 키워보자는 것이다. 6개월간 직접 보았기에 마을 분들도 적극 협조하기로 하였다. 체험 프로그램을 모듈별로 설계했다. 청년회가 주축이 되지만 각각의 프로그램에 책임자를 배정하고, 체험인원에 따라 이익금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청년회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솟아졌고, 대표적인 체험프로그램 10개를 선정해서 각각의 책임자를 배정했다.



민물고기 체험은 우식이네, 산나물 체험은 영석이네, 죽 숲 자연체험은 정회네 하는 식이다. 그리고 마을 어르신들의 아이디어로 황토방과 텃밭을 만들어 어르신들이 직접 운영하기로 했다. 드디어 펜션사업이 탈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전체적인 관리와 홍보 및 체험프로그램만 만들면 마을청년회, 부녀회, 노인회 등이 알아서 관리해 준다. 총 감독만하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벼르고 벼르던 상황버섯 재배를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해 짐에 따라 예약손님관리 등 펜션운영의 전반을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했고, 태국댁에게 더 많은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말도 잘하고 붙임성도 좋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내와 딸은 아직도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기라기 아빠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빨리 내려오라고 재촉하고 싶지도 않다. 서로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이제 40대 초반인지라, 성적 불만이 쌓여간다.



이곳 마을은 30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다른 시골마을과 같이 국제결혼을 해서 국적이 다른 분들이 많다. 당장 함께 일하는 태국댁과 우나댁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또한 마을에 있는 유일한 구멍가게에는 일본부인이 있다. 들리는 말로 부부가 통일교를 믿는다고 한다. 하여튼 10여 가구에 다양한 국적의 분들이 있다.



1년이 지나자 마을 어른들이 찾아왔다. 마을 이장으로 추대하고 싶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부녀회와 청년회까지 나서서 설득하니 어쩔 수 없이 이장이 되었다. 이장이 되고 보니, 마을의 대소사를 모두 챙겨야 해서 할 일도 더 많아지고 책임감도 무거워졌다. 대신 좋은 점도 있다. 마을 주민들의 협조로 펜션이 더욱 번창하여 제법 큰돈을 만지게 된 것이다.



수익금으로 땅을 매입해서 상황버섯 재배 준비를 시작했다. 모든 일이 순풍에 돛달듯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다만 문제는 끓어오르는 욕망이다. 한 달에 한번정도 아내를 만나지만 그걸로 외로움과 욕망을 식히기는 턱 없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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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 붓끝을 가다듬기 위해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는 글입니다.

스토리 없습니다. 개연성 없습니다.

심리묘사 없습니다. 사건, 상황성명 불친절합니다.

최대한 간결하고, 최대한 빠르게 전개합니다.

예전 붉은미르의 글을 회상하시고 클릭하신 분들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야설을 위한 글이며, 새로운 시험을 위한 글이니 지나친 기대 또한 정중히 사양합니다.

특히 댓글로 “천상의 향기”에 대한 언급은 절대 하지 마세요.

마음의 짐을 자꾸 언급하시면 다시 잠수합니다.



그냥 부담 없이................약간 환상에 취한 놈이 몽환적인 느낌으로 쓰는 글이니..........

보시는 분들도 부담 없이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 붉은미르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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